본문 바로가기

사적인 세상세람풍경들.

선교라는 이름의 여행-kavkaz

한쿡교회에서 무척이나 보내는 단기선교라는 것을 체험해 보겠습니다. 
한 간에 사회에서 말이 수없이 많고 문제도 많이 있다는 것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와서
체험을 해보고 직접 무엇이 문제인지,  왜 선교라 칭하고 여행에 가서 기도 한번 하고 오면 선교가 되는 것인지. 가보았습니다.

난 참 아이러니 했기에 저 멀리 북카프카즈(kavkaz)로 떠나보았다. 물론 선교라는 이름하에. 몇몇의 무리들과 함께.

우선 떠나는 사람들의 겉모습은 변변찮아 보였지만 정말로 신실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같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변변찮은 사람이 아니라 어떤 믿음에 의해 상당한 신뢰를 갖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각자의 체험이기에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그들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이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신뢰를 더 쌓아나갔고 모든 이야기의 끝은 예수였다.

어떤 난관과 사고의 봉착에도 그 안에는 하나님이었고 어찌나 고생을 한 사고를 수습하는 사람도 역시 감당할 수 있는 고난이라고 아름답게 포장을 해주었다.  

이번 선교라는 것을 통해서 영적인 세계가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나에게도 들게 하였지만 그들속에서 내가 쇠뇌당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마치 농활에 가면 해가 떨어질때 즈음에 현 정부를 비판하는 영상들과 강연을 통해 아무것도 모르는 대학초년생들에게 좌파를 강요하는 것 같이 말이다.) 사고와 일들의 생각접근 방식이 아예 다르다. 한 마디도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그들만의 하나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려 안간힘을 쓴다.

유럽에서 가장 크다 던 이슬람사원(모스크)에 함께 가게 되었다. 현지인들의 문화이겠고 어렸을 때부터 믿어 온 알라에 대한 경외심과 예배를 드리는 모습은 신비로왔다. 하지만 선교단체에서 파견 된 한국사람들(나를 포함한)은 이슬람사원에 히잡을 쓰고서라도 들어간다. 그리고 알라가 아닌 하나님께 기도하며 이 이러석은 이슬람신도들을 구제해 달라고 기도를 한다.

난 충격이었다. 바꿔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만약 한국교회에 아주 신실한 외국인 이슬람신도가 평상복을 입고 교회에 다니고 싶다고 하면서 매주 교회에 온다. 그리고 알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 둘 하나 둘 전도를 하기 시작한다면 한국교회에서는 어떻게 생각을 하며 대처를 할까? 아마도 교회에서는 "신천지"를 몰아내듯이 난리를 펼칠 것이 않봐도 비디오다. 

하지만 정작 자기들은 왜 그런 짓을 강요하고 해야만 하는 걸까?
이에대한 고민은 끝이 없다. 교리가 그렇기 때문에 그렇다는 사람들도 있고 기독교니까 원래 그렇다는 이상한 사람들도 있다. 난 어느 정도 인정은 하지만 무차별적인 공격적 선교는 아예 없어졌으면 한다.

한 권사님이 단기선교 도중에 존중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니까 가만히 놔두는 것이라고 존중하니까 그것을 하지 못하게 막지 않는다고. 만약에 그들이 담배를 피면 담배를 피는것을 존중하니까 가만히 놔두기는 하지만 피라고 권유는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참 이상하다. 이건 존중이 아니라 무시에 가까운 수준이다. 그들이 흡연하는 것을 존중하지만 나는 절대 손에 대지도 않고 그들에게 권하지도 않는다. 과연 이게 존중이라는 말을 쓸 수가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존중은 그들에게 아리랑 담배를 한개비 주면서 한국담배 맛 좀 보세요 라고 하는게 존중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술은 마시지 않지만 잔은 받아들고서 마시지 않는 이런 것 그들에게 소주잔 한잔 채워주는 것 정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나 내 생각은 세상적이라는 말로 깔끔하게 마무리 해주신다.

난 시간이 갈 수록 지쳐갔다. 새로운 문화에 대한 동경은 항상 가득하지만 나같이 홀리하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단기선교에 가지 말라는 것을 꼭 말하고 싶다. 하지만 거기서 얻은 사람들과 문화 이것은 단기선교가 아닌 여행에서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여행의 단기선교화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체험을 위해서 단기선교에 몸 담았지만 이 체험이 싫어지고 있었다.

북카프카즈라는 곳은 한국정부에서 여행제한국가로 지정해 주셨다. 하지만 그곳 현지에서 10년을 넘게 살고 계신 한 선교사님이 있었고 한국외교부에 10년동안 편안히 잘 살고 있는 이 나라를 왜 여행제한 국가로 낙인을 찍느냐는 항의 메일까지 보냈었다고 한다. 사실 10일정도 있었던 그 나라는 너무나도 평안해보였다. 보여주기식의 정책이 만연하기에 이것 또한 그런식의 일처리가 아닐까 하면서 안타까웠다.

어찌됐든 이제 내가 했던 구체적인 선교방법을 말하고 싶다.
우선 북카프카즈에서는 한국사람들이 별로 없기에 동양인들을 무척이나 신기하게 보는 느낌이었다. 그런 점들을 이용해서 우선 인심이 좋은 시골로 가서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아주머니들을(신앙심깊은 한국인) 시골길바닥에 떨어 뜨려 주신다. 그리고 아무나 붙잡고 이야기하다가 그 집에 손님으로 차를 마시러 간다. 그리고 복음을 전한다. 그리고 그 날밤 하루 그 집에서 묶게되고 다음날 돌아오는 방식이다. 전혀 길도 모르고 말도 몇 단어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데 예수에 대해 설명을 해보겠다고 안간힘을 쓴다. 대단하다. 그들과 우리의 문화가 다르니 뭐 무엇이 잘못된 건지 판단할 수 없겠다.그곳의 사람들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잠자리까지 내어 주는 따듯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걱정은 이렇게 다니다가는 사고가 날 법도 한데 아직 한 번도 사고가 나지 않았단다. 신비로운 일이다. 
이 나라의 테러는 주로 러시아인들을 향한 소수민족의 반격이기에 동양사람들은 전혀 건드리지 않는 다는 말을 들었다.

난 좀 더 객관적이고 싶다. 어딜가나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은 있고 말 한마디 못하는 아주머니들을 그렇게 지방으로 보내버리면 신앙으로 버티지 못할 어떤 순간이 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든다. 그리고 그 순간은 한국에 전해져 더 않좋은 상황을 만들어 나가지는 않을까. 

결국엔 마지막날에 모두 아름답게 포장이 되었지만 마음속에 남는 것들은 많이 있다.
워낙이 새로운 문화를 사랑하는 나에게 이번의 경험들은 역시나 새로웠지만 편하지만은 않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항상 들었던 생각은 차라리 여행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들.
여행과 선교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기타치며 찬양하다 만난 맥주를 사랑하는..이름을 까먹었다. 사람이 좋다.


모르는 사람과 대화랄 것도 없이 이야기를 하다가 집으로 초대된 가정의 아이들. 


역시나 순수한 아이들.